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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다

나는... 당신은, 이것에서 자유로운가?



글. 김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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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하늘에서 몇 줄기의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주섬주섬 챙겼던 우산을 펴고 횡단보도 앞에 서 는 순간 멈칫했다. 무작정 사기는 아깝고 한번 펼쳐보고 살만하면 구입할 생각으로 몇 일을 별러 광화문 교보문고로 짬을 낸 터였 다. 얼른 책을 찾아서 스마트폰으로 몇 페이지만 찍고 얼른 파주로 돌아갈 요량으로 내 발걸음은 무척이나 바빴다. 그런 내 눈 앞에는 흰 천막들, 그리고 그  앞에서 우산도 쓰지 않은 채 말없이 피켓을 든 사람들... 그리고 그 앞을 항상 보는 광경이라 는 듯 무심코 지나치는 사람들의 모습이 펼쳐진 것이다.

살기 바빠서 클릭 몇 번이면 온라인 서명 따위는 몇 분 걸리지 않고 해치울 수 있었다. 그래! 나 살기 바빠서였다. TV에서 나오는 뉴스는 나올 때만 내 마음을 흔들었지만, 손가락 몇 번 까딱이면 될 일을 나는 하지 않았던 나였다. 순간 죄책감이 밀려왔다. 그래서 손가락에 힘을 꾹꾹 눌러 또박또박 내 이름 을 적었다. 만약 펜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망치로 이름을 새겼어야 했다고 해도 해야만 했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 은 눈과 눈을 마주치지 않는 분위기였다. 단식 37일째인 유민이 아빠 김영오씨의 눈도, 그 옆에 앉아 입을 단단히 다물고 있던 문 재인씨도, 그리고 그 옆과 앞과 뒤를 지키고 서 있던 사람들도 모두 시선은 바닥을 향해 있었다. 영락없는 죄책감이 있을 때의 모습 이다. 

갑자기 한 남자아이의 웃음기 묻은 목소리가 내 귓전을 때렸다. "우와! 배가 이렇게 될줄 누가 알았겠어?" 라고 말하는 아이는 다름아닌 세월호에서 희생된 학생들이 침몰하기 직전 거의 45도 정도 기울어진 배에서 스마트폰으로 찍은 영상 을 틀어놓은 소리였다. 아이의 말처럼 그 큰 배가 그렇게 속절없이 가라앉으리라고는 살아서 그 영상을 보는 사람들도 짐작도 못했으리라. 사람들은 몇 개의 짦은 영상을 그저 말없이 지켜만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뒤로하고 내 발걸음은 다시 교보문고로 향했다. 못내 눈길이 떨어지지 않아 돌아본 광화문의 풍경 뒤로 이순신 동상이 보였고, 그 너머로 초록색의 기와지붕이 보였 다. 지난 130 여일 동안 그 초록색의 지붕에 머물고 있는 분이 유족들을 만난 횟수보다 바티칸에서 온 교황이 만난 횟수가 더 많 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심지어 초록색 지붕에 사는 분은 유족들을 노숙 시킨적도 있었으니...

천막의 정면에는 조선일보의 전광판이 구름낀 하늘을 대신해 도시의 어둠을 밝히고 있다. 환하게 빛나는 전광판에는 조선일보가 실시간으로 전하는 뉴스 헤 드라인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세월호, 단식, 유족 이라는 단어는 없었다. 광화문을 좌우로 늘어진 횡단보도의 불빛 은 초록으로 바꼈고, 나처럼 먹고 살기 바빠보이는 사람들은 유민이 아빠가 단식 중인 천막 앞을 지나 어디론가 지나간다.

오늘은 유민이 아빠가 38일째 단식하고 있는 날이다. 2일만 더 하면 예수님이 하신 금식기간과 맞먹는다. 자식을 잃은 고통에 더 해 육신이 되어왔던 신이 경험했던 고통의 크기에 근접하는 고통을 겪고 있지만, 아직 세상은  끄덕도 않고 있다. 잔인하 다. 그 38일동안 나는 밥도 잘 먹었고 휴가도 다녀왔고, 잠도 잘 잤다. 그렇게 침묵했다. 그래서 내 죄가 크다. 당신의 죄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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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14년 8월 20일 광화문 광장을 다녀오면서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글입니다. 긴박했던 상황에서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유민이 아빠는, 그리고 세월호 가족들은 여전히 외면받고 있고, 호도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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