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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다

아몰랑 자전거 타기

"환자분, 왜 혼자 왔어요?"
코 때문에 찾은 병원에서 의사가 내게 건넨 첫 마디가 그거였다. 달리 돌려보낼 말이 없어 "네!?"라고 질문과 대답의 중간 어디쯤으로 대답하니 "보호자가 같이 들어야 하는데"라며 말 끝을 흐린다. 속으로 생각했다. "어랏. 이거 드라마에서 많이 본 상황인데..."

혈압약을 먹어야 할 정도로 수치가 높았다. 하긴 병원에 도착해 재본 혈압 수치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숫자라 다섯 번을 다시 재어보긴 했다. 웃을 수만은 없지만 잴 때마다 숫자는 자꾸만 끝모르고 올라가 연차가 좀 돼 보이는 간호사에게 혈압측정기가 고장난 건 아니냐고 물었다가 애먼 눈총을 받았던 터였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산지 5년 동안 10번도 채 타지못한 자전거에 앉은 먼지를 닦아냈다. 그리고 그 날부터 집 앞 안양천을 달렸다. 자전거의 페달을 밟는 시간은 내게 고요함을 줬다. 삶의 번잡함은 자전거 페달을 밟는 고통에 훌훌 지나갔다. 소설가 김연수는 다니던 잡지사를 그만두고 할 일이 없어 달리기를 시작했다고 했다. 달리기를 통해 세상에 쉬운 일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난 후로 소설을 쓰는 고통 정도는 웃으면서 이겨냈다는데, 나도 그가 느꼈던 느낌이 엇비슷하게 느껴졌다.

자전거를 탄 첫 날을 잊을 수 없다. '착각'과 '오만'이라는 단어를 문장 속이 아닌 몸으로 체득한 날이기 때문이다. 40년 조금 넘게 살아온 인생에서 배운대로 뒤쳐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페달을 밟았다. 내 앞을 스쳐지나가는 다른 이들을 그저 지켜만볼 수 없었다. 뒤쳐지지 않기 위해 페달을 밟고 또 밟았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그렇게 밟으면 밟을수록 나는 뒤쳐졌다. 크고 멋진 자전거를 타는 청년들이 내 앞으로 스쳐 지나갔고, 단단한 허벅지를 가진 아가씨도 내 앞을 박차고 지나갔다. 심지어 그냥 크기만 한 자전거를 탄 아줌마에게도 뒤쳐졌다. 

안양에서 목동을 지나 성수대교로 이어져 있는 자전거 도로에 부는 밤 바람은 차갑기만 했다. 목동 언저리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곰곰히 생각했다. 하긴 페달을 밟는 고통을 잊는데 생각하는 것만큼 좋은 친구도 없긴했다. 관심이 없었을 때는 몰랐지만, 막상 몸으로 겪어보니 나를 둘러산 주변의 다른 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 자전거는 바퀴가 작은 미니 벨로 유형이었고, 나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전거 휠이 큰 사이클 형태의 자전거였다. 바퀴가 작은 자전거로 아무리 종종거리며 페달을 밟아봤자 한계는 분명했다. 그걸 나만 몰랐던거다. 

'착각'과 '오만'에서 내 주제를 파악하니 내 '태도'가 분명해졌다. 다음 날부터 나는 적당히 달리기 시작했다. 혈압이 높아서 죽지 않기 위해 운동을 시작한 내게 다른 사람들의 속도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었는데 나만 몰랐던 셈이다. 그랬더니 시원한 밤 공기가 내 목을 타고 등을 넘어가는 것을 느꼈다. 숨어있던 몸의 감각들이 깨어났다.

애초에 죽지 않기 위해 달리려고 했지, 죽자고 달릴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일주일에 많으면 세 번, 못 달리면 한번은 달렸다. 작은 자전거로 올해가 다 가기 전에 성산대교까지는 달려볼 심산이다. 인천에서 시작해 한강변을 달려 충주까지 달리곤 하는 자전거로 허벅지 굵어진 후배 녀석이 들으면 콧웃음 칠 이야기이긴 하지만 어차피 인생이란 내가 할 수 있는 몫만큼 사는 것이니 내가 할 수 있는 것만큼만 하고 살면 되지 않을까? 그 몫을 넘어가면 "아몰랑~"하면 되는 것이고! 웃긴 건 "아몰랑"식의 허허실실 자전거 타기가 통했는지, 며칠 전 재본 혈압이 정상이 됐다. 그래서 문득... 의문이 생기긴 한다. 그 때 그 혈압측정기가 고장 난건 아닐까?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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